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커트 보니것 (문단 편집) == 상세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헌터 S. 톰슨]]등과 함께 [[20세기]] 마지막의 굵직한 대문호 중 하나이자, [[아서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등과 함께 최후의 본격 [[SF]] 작가 중 하나였다.[* 보니것이 순수 SF 작가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서 클라크나 아시모프도 어느 정도는 그런 성향이 있었지만, 보니것의 경우 자신의 사회적, 철학적 도구로서만 SF적 세계관을 사용하는 성향이 뚜렷했고, '마더 나이트'나 '제일버드'처럼 전혀 SF와 상관 없는 작품도 많이 썼다.] 미국 본토에서는 20세기의 [[마크 트웨인]]이라 불릴 만큼 명망이 높았지만, 그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허무주의]]적, [[염세주의]]적인 내용 때문에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작가다. 80대 중반까지 매일 [[담배]] 두 갑 이상을 피우면서도 잘만 살다가 지붕을 수리하러 올라가던 중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후유증으로 별세했다. 본인은 "흡연은 격조 있는 자살 행위이다"라고 말하기도 했고, 말년에는 자신이 평생 피우던 팔몰 담배 회사에 직접 소송을 걸기도 했다. 이걸 피우다 보면 죽을 거라고 했으면서 본인은 80 넘도록 창창하다고. 팔몰 회사가 죽을 때까지 공짜 담배를 보내 주는 걸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물리학자]]인 그의 형은 [[이그노벨상]] 수상 경력도 있다. [[유머]]가 넘치는 소설들을 쓰지만, 가족사를 보면 좀 충격적인 것이 어머니가 [[자살]]했고 [[우울증]]이 집안 내력이다. [[코넬 대학교]] 생화학과에 다니던 중 전쟁에 반대하는 글을 기고하고, 성적도 개판이라 학교에서 경고를 먹고 미 육군으로 입대한다. 군 복무와 병행해서 기계 공학 및 병장기 운용에 관련된 훈련을 받은 그는 [[카네기 멜런 대학교]]와 [[테네시 대학교]]등의 교육 기관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 경력을 살린 특수 병과 소속으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그 후 [[자주포]] 운용병으로 복무하다 [[오버로드 작전]]으로 인해서 주특기를 바꿔 정찰병 교육을 받는다. 이 시절 휴가를 받아 집에 오니 어머니가 [[수면제]] 중독으로 자살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후 수색대에서 구르다가 [[벌지 대전투]] 중 독일군에게 잡혀 하필이면 [[드레스덴]]에 가고 [[제5도살장]]이란 [[도살장]]을 개조한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었는데, [[드레스덴 폭격]]으로 인하여 아군의 손에 타 죽고 살아남은 독일인들에게 멱살 잡혀 죽을 뻔했다가 겨우 살아남았다.[* 독일인 뿐만 아니라 드레스덴에 억류되있던 미군 포로들도 연합군의 폭격으로 다수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었다고 하며 이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보니것은 평생 PTSD와 혼자만 멀쩡히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에 본 참상 때문에 그는 평생 [[PTSD]]에 시달렸으며, 이 경험은 보네거트 특유의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허무주의적 세계관의 기반이자 소설 "제5도살장(Slaughterhouse-Five, 1969년작)"의 뿌리가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로 인해 [[퍼플 하트|퍼플 하트 훈장]]과 전쟁 포로 훈장을 받은 보네거트는 [[1967년]]에 전우와 같이 드레스덴에 다시 가게 된다. 종전 이후 [[시카고 대학교]]의 인류학과에 석사로 들어갔지만 논문을 인정받지 못하고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었으며, 고양이 요람 같은 작품을 써내며 작가로 등단한다. 그리고 시카고 대학교 인류학과는 이 '고양이 요람'을 석사논문으로 인정해 그에게 석사학위를 준다(...). 보니것의 글은 본인의 [[인본주의]]적 사상, 유년기 때부터 관찰해온 인디애나 지방의 노동 운동의 경험 등이 섞여 날카로우면서도 위트 넘치는 사회상을 보여준다. 대부분 결말들이 [[꿈도 희망도 없어]]서 그렇지... 이러한 면이 보니것 본인의 사상적 핵심이기도 하다. 때문에 보네거트는 1960년대 미국 카운터컬처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사실 보니것의 이런 보헤미안 이미지는 그가 많은 고민과 노력 끝에 만들어 낸 모습이며, 실제로는 매우 합리적이고 계산에 밝은 인물이었다. 1960년대 당시 시대 조류였던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과 반자본주의 정신("히피" 및 "비트닉" 등으로 대표되는)에 편승하기 위해 작품의 성향을 완전히 바꾸면서, 자신의 이미지 또한 그에 걸맞게 꾸민 것이다. 실제로 그의 문학적 스타일은 1969년 "제5도살장"을 써내기 전과 후가 너무나 다르다. 특히 변신 후 첫 작품인 "제5도살장"은 당시 시대조류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보니것을 일개 SF 작가가 아니라 미국 문학계의 거두로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해 준 중요한 작품이다. 1952년작인 "자동식 피아노(Player Piano)"와 1969년작인 "제5도살장" 및 그 이후 작품을 비교해 보자. 같은 작가가 썼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스타일이 다르다. 자기 자신의 외모 또한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바꾸었는데, 보니것은 이 문서의 맨 위에 나오는 사진의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제5도살장 전에는 말쑥한 느낌의 평범한 외모였다(아래 사진 참조). [[파일:external/pds27.egloos.com/c0026297_57626c28ca111.jpg]] 보니것이 서명에 곁들이는 자신의 캐리커처 역시 변신 후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파일:external/pds27.egloos.com/c0026297_5762712c477a8.jpg]] 물론 그렇다고 보니것의 중기 이후 작품을 깎아내리는 비평가나 독자는 없으며, 오히려 성공적인 이미지 변화를 거쳐 작가로서 완성되었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이와 동일한 예로 미국 유명 코미디언인 [[조지 칼린]]이 있다. 그 역시 냉소주의적 및 반체제주의적 유머로 유명한 독설가 코미디언이었지만, 변신 전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조니 카슨]] 비슷했다). 칼린과 보니것이 이렇게 변신한 것은 당시 유럽과 미국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무의미한 알제리 전쟁, 베트남 전쟁 등에 대한 반발로 인해서 68운동, 반전운동이 폭발하면서 기성세대와 기성체제를 만악의 근원으로 몰아세우던 반문화사상, 히피운동이 절정이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즉 그렇게 변신하니 않고서는 당시 문화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중기 이후 작품들은 극도로 단순 명료한 문장만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으로, 기교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주제에 핵심적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뛰어난 글이다. 때문에 영어 소설을 읽으며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도 권할 만하다. 마더 나이트 서문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세상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도덕적인 충고라는 말이 >When you're dead, you're dead. Also, make love when you can. It's good for you. >"당신이 죽었으면, 죽은 거다(= 때가 오면 이미 늦었다). 또, 당신이 할 수 있을 때마다 [[섹스|사랑을]] 나눠라. [[그것은 좋은 것이다|그게 당신한테 좋은 것이다]]." 즉,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절망과 모순만이 가득한 세계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지성에서 비롯되는 체념과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최대한 감사히 누리는 것이라는 말이다. 아래에 수록된 어록과 명대사를 읽어보면 "그래도 웃어라"라는 생각을 느낄 수 있다. ~~[[카르페 디엠]] 돋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